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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월츠네거 훈련 프로그램

글쓴이 : 헬스피플 날짜 : 2009-02-05 (목) 17:33 조회 : 35810
 

아놀드 슈월츠네거 Arnold Alois Schwarzenegger (1947~ )


  1962년,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짧게 머리를 깎은 15살짜리 소년이 바벨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괴성을 지르며 클린 앤 프레스에 열중하고 있는 소년은 20세트 째의 마지막 반복을 마치자 거친 숨을 내쉬며 벽을 마주하고 섰다. 벽에는 잡지에서 오려낸 보디빌더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소년은 나지막한 소리로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레그 파크 같은 보디빌더가 되겠어!”

  잠시 숨을 고른 소년은 벽에 붙여 놓은 사진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우상, 레그 파크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인 스쿼트를 하기 위해 바벨을 랙 위로 올려놓는다. 그는 다시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레그 파크처럼 되겠어.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20세트의 스쿼트를 먼저 해야 하겠지.”

  들썩하며 바벨이 랙으로부터 떨어지고, 소년은 바벨과 함께 자신의 꿈을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년은 몰랐겠지만, 현대 보디빌딩의 새로운 역사도 그 바벨과 함께 소년의 어깨 위에서 들썩거리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 중의 한 명이자, 은퇴 후에는 영화배우로서 더 큰 명성을 얻었고, 2003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된 아놀드 슈월츠네거. 그의 보디빌딩 인생은 이렇게 오스트리아의 허름한 체육관에서 레그 파크의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 하며 시작되고 있었다.

  1947년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놀드 슈월츠네거는 어려서부터 각종 스포츠에서 재능을 보였다. 축구, 육상, 수영, 복싱 등 다방면의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아이스 컬링 선수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전국 아이스 컬링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처음 바벨과 덤벨을 잡게 된 동기는 순전히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의 체력 향상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웨이트 리프팅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당시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체육관이 그렇듯이 아놀드가 처음 훈련한 체육관도 보디빌딩보다는 역도 훈련을 주로 하는 체육관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어른들을 따라 클린, 프레스, 스내치, 스쿼트로 몸을 단련하였는데, 이때의 역도 훈련은 그가 후일 강도 높은 보디빌딩 훈련을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에 실린 레그 파크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목표를 만든다. 우람하면서도 아름다운 레그 파크는 소년 아놀드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레그 파크의 훈련 방식은 물론, 어떻게 먹고,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해 샅샅이 알아낸 그는 제 2의 레그 파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보디빌딩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5년 뒤인 1967년, 20살의 청년 아놀드는 자신의 우상인 레그 파크가 우승했던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고, 3년 후인 1970년에는 23살의 나이로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그의 보디빌딩 인생의 화려한 정점이 아니라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1975년까지 6연속 미스터 올림피아가 된 그는 스스로 은퇴를 선언 한 후, 영화 출연 더불어 보디빌딩을 전파하는 역할에 전념한다. 1977년은 그의 영화 인생이 본격적인 궤도로 올라선 해이자, 보디빌딩이라는 스포츠가 그 어느 때보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해이다. 그는 영화 [스테이 헝그리]로 골든 글러브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근육질 괴물이 아닌 배우로서 인정받게 되었으며, 1975년의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펌핑 아이언]은 보디빌딩을 경이로운 신화의 영역이 아닌, 일상 속의 대중적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드는데 일조했다. 물론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아놀드 슈월츠네거였다.

  아놀드는 엄청난 훈련량으로 유명했다. 일주일에 6일을 훈련하고, 하루에 2번, 어떨 때는 하루에 3번을 훈련했다. 1966년에 그는 오스트리아의 기갑병으로 입대하게 되는데, 고된 훈련 일과 속에서도 그는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1시간 동안 훈련하고, 자기 전에도 침대에 누워 쉬는 것이 아니라 1시간 동안 훈련을 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군인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일과 시간으로 인해 오전과 오후에 나누어 실시한 그의 훈련 방식은 후일 죠 웨이더에 의해 이중 분할 훈련Double Split System이라 명명되고 많은 보디빌더들의 기본 훈련 방법이 된다. 하루에 두 번씩 운동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하는 운동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즐겨했던 훈련 루틴의 한 예는 다음과 같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훈련량이다. 게다가 잘 알려져 있듯이 아놀드는 훈련시 대단한 집중력으로도 유명했던 만큼 단 하나의 반복, 하나의 세트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이 루틴과 관련하여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아놀드가 당신의 우상이라고 할지라도, 아놀드의 이 훈련 루틴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점이다. 불행히도 그의 유전자는 평범한 인간들의 것과는 다르다. 호르몬 분비 시스템이라든가, 에너지 대사의 효율, 중추신경계의 회복 능력 등을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상태로 타고났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발달시켜 온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일류 마라토너들의 심장과 폐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어설프게 따라했다간 오버트레이닝으로 근육이 자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갈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엄청난 양의 훈련으로 짜인 이 루틴을 보고 단순히 약물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에 관한 것이다. 앞서 간단히 언급한 바 있는 HIT 훈련법이 등장한 이래, 분할-볼륨 훈련이 마치 약물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훈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약물 사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의 보디빌더인 스티브 리브스가 분할-볼륨 훈련의 시초였음을 밝힌 바 있다. 스티브 리브스의 경우 무려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훈련한 적도 있다. 아놀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놀드 스스로 약물 사용을 인정한 바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가 미국으로 건너온 1968년 이후의 일이다. 적어도 미스터 유니버스를 차지한 1967년까지의 초기 성과는 약물과는 무관한 것이었으며, 이때까지의 그의 훈련량은 위의 루틴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 아놀드의 엄청난 훈련량은 유전적 축복과 위대한 열정이 결합하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현명할 것이다. 

  이상으로 스티브 리브스, 레그 파크, 아놀드 슈월츠네거 세 명의 위대한 보디빌더들을 그들이 창안한 훈련 루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들의 훈련 루틴은 각기 달랐지만, 그들의 근육은 한결같이 보디빌딩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급자 단계는 특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자신을 맞춰서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단계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훈련 프로그램을 완성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상급자, 보디빌더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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